유럽 가톨릭 국가의 건축물과 양식


1. 렌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운동감

17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유럽의 가톨릭 국가에서는 바로크 운동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신교 국가들은 한껏 위세를 떨치던 이 바로
크 유행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제로 채용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영국의 스튜어트 왕조가 프랑스
쪽으로 기울어 청교도적인 취향과 세계관을 싫어했던 왕정복고 시기에도 그랬다. 이 시기에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건축가는 크리스토퍼렌경이었는데 영국은 1666년의 대 화재를 입은 런던의 교회당들을 재건하는 임무를 그에게 맡겼다. 그가 지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불과 20여 년 전에 로마의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교회와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렌은 로마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지만 바로크 건축가들의 건물 배치 방법과 장식적인 효과에 큰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렌의 성당은 보로미니의 교회당보다 규모가 훨씬 크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중앙의 둥근 지붕과 양쪽의 탑들과 고대신전의 정면을 연상시키는 정면 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 로미니의 바로크식 탑과 렌의 탑 사이에는 확실히 유사성이 있으며 특히 2층의 경우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정면 현관들이 주는 전반적인 인상은 대단히 다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곡선적인 곳이 없어서 운동감을 암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강인함과 안정감을 준다. 건물에 당당함과 고귀함을 주기 위해서 사용된 쌍으로 나란히 선 원주들은 로마의 바로크 양식보다는 오히려 베르사유 궁전의 정면을 연상시킨다. 세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렌의 양식을 바로크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이게 될지도 모른다.

2. 블렌하임궁의 양식과 그 대단함의 표본

그의 장식에는 괴상한 것이나 환상적인 면이 하나도 없다. 그의 모든 형태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모델들을 엄격하게 따르고 있다. 건물의 각 형태와 부분은 그것이 갖는 본질 적인 의미를 상실하지 않은 그 자체로 보여질 수도 있다. 보로미니나 멜크 수도원 을 지은 건축가의 자유분방함에 비하면 렌은 우리들에게 은근하고 침착한 인상을 준다. 신교와 가톨릭의 교회 건축의 대조는 렌이 설계한 교회, 예를 들면 런던의 세인트 스티븐 윌브룩 교회와 같은 건물의 내부를 살펴보면 훨씬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교회는 주로 신자들이 예배를 위해서 만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그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닌 천국의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도들의 생각들을 집중시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설계한 많은 교회에서 렌은 엄숙하고 동시에 간소한 느낌을 주는 이러한 공간의 테마에 언제나 새로운 변화를 주고자 노력했다. 교회들이 그랬듯이 성들도 동일한 경향을 따랐다. 영국의 어떠한 왕도 베르사유와 같은 궁전을 짓는데 필요한 엄청난 자금을 모을 수가 없었고 영국의 귀족들 또한 사치와 방종의 면에서 독일의 제후들과 경쟁하려 하지 않았다. 건축의 열기가 영국에 도달한 것은 사실이었다. 말버러 공작의 블렌하임궁은 외 젠공의 벨베데레 궁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예외적인 경우였으며 18세기 영국의 이상은 성이 아니라 교외의 저택이었다. 교외의 저택들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보통 바로크 양식의 지나친 호사스러움을 배격했다. 그들의 야심은 그들이 고상한 취향이라고 생각한 규칙을 하나도 위반 하지 않고 고전 건축의 실제적인 또는 그렇다고 주장하는 법칙을 가능한 한 충실 하게 따르려는 것이었다. 고전 시대 건축들의 유적을 과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측량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건축가들과 장인들에게 표본을 제공해주기 위해서 그들의 연구 조사 결과를 교과서로 출판했다.

3. 팔라디오식 건축과 작은것 하나 놓치지 않은 섬세함

이 교과서들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저술한 것인데 이 책은 18세기 영국에서 건축에 관한 모든 취향을 규정하는 최고의 권위서로 간주되었다. 자기의 별장을 팔라디오식으로 짓는 것이 유행의 첨단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팔라디오식 별장인 치직 저택이다. 취향과 유행의 위대한 선도자인 벌링턴경이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 직접 설계하고 그의 친구인 윌리엄 켄트가 장식한 이건물은 정말로 팔라디오의 로톤다 별장과 대단히 유사하다. 힐데 브란트나 가톨릭 유럽의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영국의 저택을 설계한 건축 가들은 어디에서나 고전건축의 엄격한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당당한 현관은 코린트식 기둥 양식을 지닌 고대 신전의 정면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의 벽은 단순하고 평범하여 곡선이나 나선형이 없고 지붕 위를 장식하는 조각상도 없으며 그로테스크한 장식도 없다. 그 이유는 벌링턴 경과 알렉산더 포프시대의 영국에서는 취향의 척도가 또한 이성의 척도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전반적인 기질은 바로크식 장식에 나타난 공상의 비약에 반대했고 또 감정을 압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예술에도 반대했다. 베르사유 궁의 정원 양식같이 끝없이 이어지는 잘 다듬어진 생 울타리와 작은 길까지 건축가의 설계에 포함되어 실제 건물 이외의 주변 지역까지 확장된 형식적인 느낌을 주는 정원은 불합리하고 인공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