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사람들

1.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그림같은 모습

켄트같은 사람은 팔라디오식 별장의 이상적인 주변 경관으로서 영국의 풍경 정원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건축에 있어서의 이성과 취향의 척도를 한 이탈리아 건축가의 권위에서 찾았듯이 경치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서도 남유럽의 한 화가에게 의존했다.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지에 관한 그들의 생각은 대체로 클로드로랭의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18세기 중엽에 조성된 윈트셔 주 스타우어헤드의 아름다운 정원풍경을 로랭과 팔라디오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배경에 있는 신전은 팔라디오의 로톤다 별장을 연상시키는 한편 연못과 다리, 로마의 건물을 연상케 하는 전체적인 경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영국 풍경의 아름다움이 클로드 로랭의 회화에서 영향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취향과 이성의 척도에 의거한 영국의 화가나 조각가들의 입장이 반드시 부러울 만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신교의 승리와 성상이나 사치에 대한 청교도들의 적대 의식이 영국의 미술 전통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회화에서 유일하게 수요가 여전한 영역은 초상화 부문이었는데, 이러한 기능마저도 주로 홀바인이나 반 다이크같은 외국 화가들이 충족시켰다. 이들은 외국에서 명성을 얻은 뒤에 영국으로 초청된 화가들이었다. 벌링턴 시대의 상류 사회 신사들은 청교도적인 이유를 내세워 그림이나 조각을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외부의 세계에서 아직 명성을 얻지 못한 본국의 미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저택에 걸 그림을 원할 경우 그들은 차라리 유명한 이탈리아 화가의 이름이 들어 있는 그런 그림을 사려했던 것이다.

2.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림의 효용가치

그들은 당대의 화가들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미술품 감식가로 자처했으며 또 그들 중 일부는 옛 거장들의 훌륭한 걸작품들을 수집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책의 삽화를 그려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영국의 한 젊은 판 화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호가스였다. 그는 해외에서 수백 파운드를 들여서 사오는 그림들을 그린 화가들처럼 자신도 훌륭한 화가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영국에는 그 시대의 새로운 미술을 이해해주는 대중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끌 새로운 양식의 그림을 창조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사람들이 그림의 효용이 무엇인가라고 묻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고 청교도적인 전통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예술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에게 착한 일의 보상과 악한 일의 대가를 가르칠 많은 교훈적인 내용을 그릴 것을 계획했다. 그는 방탕과 나태로부터 범죄와 죽음에 이르는 탕아의 편력이나 소년이 고양이를 놀리는 일에서부터 어른들의 잔인한 살인에까지 이르는 잔혹의 네 단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가 이러한 교화인 이야기와 경고의 사례들을 어찌나 잘 그렸던지 이 일련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다 그 그림이 의미하는 모든 사건들과 교훈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상 그의 그림은 일종의 무언극처럼 모든 등장 인물들은 각각 주어진 임무에 맞는 제스처나 무대의 소도구를 사용해서 그들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3. 익살스런 에피소드로 그림을 채우는 얀스텐

호가스 자신도 이 새로운 유형의 그림을 극작가나 연출가의 수법에 비교했다. 그는 각 인물의 성격을 얼굴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옷차림이나 행동을 통해서도 표현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의 연속 그림들은 하나의 이야기나 아니면 오히려 하나의 설교처럼 읽혀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런 유형의 미술은 호가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중세 미술이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형상을 사용했으며 또 그림을 통해 설교를 하는 이러한 전통은 호가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미 대중 미술 속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술주정뱅이의 운명과 도박의 위험을 보여주는 조잡한 판화들이 시장에서 팔렸으며 또 엉터리 시인들도 그 비슷한 이야기들을 담은 소책자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호가스는 이런 점에서 볼 때 대중 미술가는 아니었다. 그는 과거의 대가들과 그들이 회화적인 효과를 내는데 사용한 방법을 세심하게 연구했다. 그는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익살스런 에피소드로 그림을 채우고 또 인간의 유형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했던 얀스텐과 같은 네덜란드의 대가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또 당시의 이탈리아 화가들과 구아르디풍의 베네치아 화가들의 수법도 알고 있었다. 구아르디로부터 그는 붓을 두세 번 힘차게 휘두름으로써 한 인물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