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탈리아 화가들

1.  완성된 극을 달려가는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

1520년경 이탈리아 도시들의 모든 미술 애호가들은 회화가 완성의 극에 달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레오나르도 등은 그전 세대가 이룩하려고 노력했던 모든것을 실제로 해냈다. 그들에게는 소묘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는 하나도 없었으며, 또 주제상의 어떠한 문제도 그들이 감당하기 벅찰 만큼 복잡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아름다움과 조화를 올바르게 결합하는 방법을 보여주었고 당시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이 심지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가장 유명한 조각 작품들까지도 능가한다고 생각했다. 장차 위대한 미술가가 되고자 하는 소년에게 그 당시의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는 결코 듣기에 기분좋은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당대의 위대한 거장들의 경의적인 작품들에 제아무리 감탄했다 할지라도 미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미 다 이룩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 당연히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어떤 미술 지망생들은 이러한 생각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미켈란젤로가 연구했던 것을 열심히 배우고 최선을 다해서 그의 수법을 모방하려고 했던 것 같다. 미켈란젤로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자세의 나체상을 즐겨 그렸다. 그들은 미켈란젤로의 나체상들을 그대로 베껴서 그것이 그들의 그림에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상관없이 그림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한 결과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울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성경 이야기를 그린 장면에 젊은 운동 선수들같은 우람한 체격의 나체 인물들이 가득 등장했다. 그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의 유행에 휩싸여 단순히 그의 수법만을 모방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보는 후대의 비평가들은 이 시기를 가리켜 매너리즘시대라고 불렀다.

2. 괴상하고 기교에 치우치는 실험

그러나 그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 모두가 어려운 포즈를 취한 나체들만 모아놓으면 그림이 된다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많은 미술가들은 미술이 마침내 정지해버린 것인지, 또는 그 이전 시대 의 거장들을 능가하는 것이 정말로 불가능한 것인지, 인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는 그들을 능가할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방면에서도 과연 그러할 것인지 등에 대해 의심해보았다. 터무니없이 기발한 착상으로 그들을 이겨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상징적인 의미와 해박한 지식으로 가득찬 그림을 그리고자 했는데, 사실 그러한 지식이란 굉장한 학식을 지닌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이집트의 상형 문자나 지금은 반쯤 잊혀진 고대 저술들의 의미를 아는 사람 정도나 해독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그림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미술가들은 이전 세대의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보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애매하고 덜 단 순하거나 조화롭지 못하게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고 했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주장했던 것 같다. 즉 거장들의 작품은 완벽하 다. 그러나 완벽한 것이 영원히 흥미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거기에 익숙해지면 그러한 작품은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 놀랍고 기발하고,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그런 것을 추구하려 한다. 물론 고전적인 거장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능 가하려는 이 젊은 미술가들의 강박 관념에는 어딘지 건전치 못한데가 있었다. 이것은 심지어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들까지도 괴상하고 기교에 치우친 쓸데없이 복잡한 실험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선배들을 능가하려는 이들의 미친듯한 노력 그 자체가 그들이 과거의 거장들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도 자신을 가리켜 스승을 능가하지 못한 불쌍한 제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 위대한 고전적인 거장들 자신도 어느 정도는 새롭고 생소한 실험을 시작했고 또 고무되기도 했다. 바로 그들의 명성과 그들이 만년에 누린 명예가 그들로 하여금 구도나 채색 에 있어서 새롭고 비정통적인 효과를 시험해봄으로써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게 만들었다.

3. 젊은 미술가들의 독창적인 창안들

특히 미켈란젤로는 모든 관례를 대담하게 무시할때가 많았다. 다른 분야에서보다도 특히 건축에 있어서 그는 고전적인 전통의 신성불가침한 규칙들을 버리고 그 자신의 기분과 변덕을 따를 때가 많았다. 대중으로 하여금 한 예술가의 기발한 착상과 창안을 찬양하는데 익숙하게 만든 것도 미켈란젤로였으며 자신의 초기 걸작의 비할 데 없는 완벽성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쉬지 않고 표현의 새로운 수법과 양상을 탐구하는 천재의 본보기를 보여준 것도 바로 미켈란젤로였다. 이러한 대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젊은 미술가들이 그들의 독창적인 창안을 가지고 대중을 놀라게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이러 한 노력으로 인해 다소 재미있는 디자인이 생겨나게 되었다. 건축가이자 화가인 페데리코 추카리가 설계한 얼굴 모양의 창문은 이러한 기발한 창안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을 올렸는데, 사실 그들은 이런 점에서 브라만테 세대의 거장들을 능가했다. 이들 다른 건축가들은 그들의 박식과 고전 작가들에 관한 지식을 과시하는데 더 열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박학했던 사람은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였다. 이것도 어떤 점에서는 기발한 창안에 속한다. 왜냐하면 사면 이 동일하며, 하나의 중앙 홀을 중심으로 각 면이 신전의 정면 형태를 한 현관을 가지고 있어 로마의 판테온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구성이 제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이것은 사람이 들어가 살기에는 부적합한 것 같다. 기발함과 인상적인 효과에 대한 추구가 건축의 일반적인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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