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훌륭한 미술가의 자질

1.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탁월한 재능

갑옷을 입고 있는 장군과 말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집중된 에너지와 어느 시점에서 보더라도 뚜렷한 윤곽에 이 작품의 위대성이 있다. 이러한 걸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방에서 젊은 레오나르도는 확실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주물 공작과 기타 금속 공예의 비법을 전수받 았을것이며 또한 나체 모델이나 옷을 입은 모델을 습작해보며 본격적인 그림과 조각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준비를 하였을것이다. 또한 그림 속에 포함시킬 식물이나 이상하게 생긴 동물들을 관찰하는 법과 원근법이나 안료의 사용법에 관한 철저한 기초를 습득했을 것이다. 보통의 재주가 있는 소년인 경우라도 이만한 훈련으로 훌륭한 미술가가 되기에 충분하였으리라. 사실 많은 훌륭한 화가들과 조각가들이 베로키오의 번창하는 공방에서 배출되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단순히 재주가 있는 소년이 아니었다. 그의 강력한 정신력은 범인들에게 항상 경의와 감탄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천재였다. 우리는 그의 제자들과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보존해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스케치북과 노트북을 보면서 그의 정신의 활동 범위와 그 엄청난 생산성에 놀라게 된다. 그 속에는 그가 쓴 글과 소묘 그가 읽은 책에서 발췌한 글들, 쓰려고 했던 초고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한 인 간이 각기 다른 연구 분야에서 이토록 탁월할 수가 있으며 또 거의 대부분의 분야 에서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었는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아마도 그 이유의 하나는 레오나르도가 교육받은 학자가 아니라 피렌체의 한 미술가였다는 데 있을것이다. 그는 그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미술가의 임무는 더 철저하게 그리고 더 열정적으로 더 정확하게 눈에 보이는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 창의적인 실험의 미술가이자 음악가

그는 학자들의 책에서 얻은 지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라틴어는 거의 모르고 그리스어는 전혀 몰랐다. 대학의 학자들이 존경받는 고대 저술가들의 권위에 의지하고 있을 때에 화가인 레오나르도는 자기가 읽은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권위자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실험으로 해결하였다. 그는 자연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느꼈고 창의적 정신으로 이 모든 것에 도전했다. 30구 이상의 시체를 해부해서 인체의 비밀을 탐구하기도 했으며 자궁 속에서 태아가 성장하는 신비를 조사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파도와 조류의 법칙을 연구했으며, 곤충들과 새들이 나는 것을 관찰하고 분석하는데 수년을 보내고 언젠가는 현실화되리라고 확신한 비행 기구를 고안하기도 했다. 바위와 구름의 형태, 멀리 있는 물체의 색채에 미치는 대기의 영향, 초목이 성장하는 것을 지배하는 법칙들, 음의 조화 등이 그의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었고 이것이 그의 예술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동시대인들은 레오나르도를 이상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면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군주들과 장군들은 이 놀라운 마술사를 성채와 운하의 건설, 새로운 무기와 장치를 만드는 군의 기사로 등용하고자 했다. 평화시에 그는 자신이 발명 한 작동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그리고 무대 공연과 구경거리를 위한 새로운 장치를 꾸며 그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위대한 미술가로 존경받았고, 훌륭한 음악가로 추앙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과 지식의 범위를 어렴풋이나마 알고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레오나르도가 그의 저술을 한번도 출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데 그러한 그의 저작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3. 호기심으로 뭉친 세기의 예술가

그는 왼손잡이었으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써서 그의 글은 거울을 통해서만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견해가 이단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하여 그의 발견들을 남에게 밝히기를 꺼려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글 가운데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레오나르도가 훗날 갈릴레오가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예견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는 단순히 그의 만 족할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연구와 실험을 해나갔으며, 일단 그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면 아직도 탐구해야 할 다른 많은 신비가 있었으므로 그것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레오나르도는 남들이 자신을 과학자로 보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에 대한 이 모든 탐구는 그의 미술에 필요한 가시적인 세계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그의 미술을 과학적인 토대 위에 올려 놓음으로써 그가 사랑하는 회화 예술을 비천한 기술로부터 존경받는 신사다운 작업으로 변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들로서는 미술가들이 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이처럼 신경을 썼을 것에 대해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는 이것이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보았다.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가구공 스너그 직공 보텀, 그리고 땜 장이 스누트에게 어떤 역할들이 주어졌는지를 상기한다면 이러한 몸부림의 배경 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문 교육에 포함시킬 수 있는 몇몇 교양 과목과 손을 가지고 하는 일을 구별하였는데 후자는 손을 써서 하므로 비천하며 그렇기 때문에 신사의 품위에 걸맞지 않다고 기술하여 고대의 속물주의를 명문화 해놓았었다. 레오나르도와 같은 사람들의 야심은 그림 또한 학예에 포함되어야 하며 그림 그릴때의 손작업은 시를 쓸 때의 노동만큼이나 결코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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