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피어나는 황홀한 예술

1.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황홀한 짜임새

그러나 이처럼 엄청난 작업조차도 늘 새로운 형상들을 창조하려는 그의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듯이 그는 이 그림들 사이의 경계에 또 다시 수많은 인물상들을 그려넣었다. 이들 중에는 조각상같은 사람도 있으며, 또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살아있는 듯한 청년들도 보이는데, 그들은 장식품을 휘감고 아직 더 많은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는 커다란 원형 메달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 그림의 중앙 부분에 속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 이외에도 궁왕 천장의 바로 밑부분에 그는 무한히 다양한 남녀의 모습을 끝없이 이어놓았는데 그것은 성경속에 열거된 예수의 조상들을 그린 것이다. 사진을 통해서 이처럼 많은 인물상들을 보면 천장 전체가 혼란스럽고 균형이 잡히지 않았으리라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스티나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서 그 천장화를 단순히 하나의 훌륭한 장식으로만 생각하고 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조화로운지 그리고 전체의 짜임새가 얼마나 명료한지를 발견하고는 대단히 놀라게 될 것이다. 1980년대에 거기에 쌓인 그을음과 먼지의 두터운 층을 제거한 이래로 그 강렬하고 밝은 색채가 드러났는데, 그토록 좁고도 적은 수의 창문을 지난 이러한 예배당에서 그 천장화가 보일 수 있게 하려면 당연히 밝게 채색해야했을 것이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궁륭에 그려진 그림의 일부로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 장면의 양쪽에 있는 인물들을 어떻게 배치해 놓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쪽에는 어린아이가 받쳐주고 있는 커다란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방금 읽은 것을 기록하려고 몸을 돌리는 예언자 다니엘이 있다. 그의 옆으로는 책을 뚫어지게 보고있는 쿠마이의 무녀가 있다. 반대편에는 오리엔트풍의 의상을 입은 늙은 여자인 페르시아 무녀가 성경을 눈 가까이 갖다 대고 성경의 구절을 열심히 연구 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논쟁을 벌이는 듯 격렬하게 몸을 홱 돌리고 있는 구약의 예언자 에제키엘이 그려져 있다.

2. 미켈란젤로의 다양한 인물묘사

그들이 앉아 있는 대리석 의자에는 장난치는 아이들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 양쪽에는 커다란 메달을 천장에 화려하게 달아매려고 하는 나체 인물상들이 둘씩 짝지어져 있다. 또 삼각 소간에는 성경에서 전해지는 예수의 조상들이 구부린 자세로 묘사되어 있다. 이들 놀라운 인물 상들은 미켈란젤로가 어떤 자세든지, 어떤 각도에서든지 인체를 능수능란하게 그리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이 젊은 운동 선수들은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몸을 틀어 돌리고 있으나 언제나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천장에는 자그만치 20여명의 이런 인물상이 있는데 하나하나가 그 이전 것보다 더 훌륭해 보인다. 카라라의 대리석으로부터 그가 소생시키려 했던 많은 이미지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릴 때 연출되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탁월한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가 가장 선호하는 대리석을 가지고 계속 작업할 수 없게 되자 그 실망과 분노가 오히려 그를 더욱 자극하여 적들에게 실제로 그런 적들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가 오해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만약 그들이 그림을 그리도록 강요한다면 좋다. 그렇다면그림으로 보여주겠다고 분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미켈란젤로가 모든 세부를 얼마나 세심하게 연구하였으며 소묘를 통해 각 인물상들을 얼마나 주의깊게 준비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의 스케치북의 한 페이지인데 그는 무녀 하나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여러 가지로 연구하였고 묘사하지도 못했던 꿈틀거리는 근육의 작용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 시대의 거장들이래로 아무도 관찰하지 못했고 한 나체화들을 통해서도 그가 비길데 없는 거장임을 보여주었겠지만 그보다는 성서의 테마들을 묘사한 천장화의 중앙 부분들을 통해서 그는 더욱 상상할 수조차 없는 위대한 거장임이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힘찬 몸짓으로 초목들과, 해와 달과 같은 천체들과 동물들과 인간들을 불러내는 조물주의 모습을 본다.

3. 최초의 인간인 아담 작품의 전능함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미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수십 세대를 통해서 각인되어 떠오르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은 미켈란젤로가 그의 천지창조에서 그려보인 그 위대한 비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고 만들어졌다고 하여도 절대로 그것은 과언이 아니다. 그가 그린 창세기의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것은 그 커다란 구획들 중 하나에 그려진 아담의 창조도판이다. 미켈란젤로 이전의 미술가들도 땅 위에 누워 있는 아담을 하느님이 손을 대기만함으로써 그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그림들을 이미 오래 전부터 그린바 있지만 아무도 이처럼 간단하고 힘차게 위대한 창조의 신비를 표현하지는 못했다. 이 그림에는 우리의 시선을 주제로부터 다른데로 돌리게 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담은 최초의 인간답게 힘차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땅 위에 누워 있다. 반대편에서는 아버지 하느님이 천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고 있다. 돛과 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넓고 장엄한 망토를 입고 있는 모습은 허공을 빠르고 쉽게 날아다닐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느님이 손을 뻗치자 아담의 손가락에 채 닿기도 전에 이 최초의 사람은 마치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그의 창조주인 아버지 하느님의 자애로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하느님의 손길을 이 그림의 중심에 두어 초점으로 만들고 의연하고 힘찬 창조의 모습을 통해서 신의 전지 전능함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방법은 미술의 가장 위대한 기적중의 하나이다. 미켈란젤로는 1512년 시스티나 예배당의 위대한 작품을 완성하자마자 곧 율리우스 2세의 영묘 건립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대리석 조각에 착수했다. 그는 그 영묘를 로마의 유적들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수많은 포로들의 조각상으로 장식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 군상들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계획하였던 것 같다. 이들 중의 하나가 죽어가는 노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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