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건축물과 회화를 살아있게 하는 화가

1. 화려한 베네치아의 건축의 법칙

우리는 이제 이탈리아 미술의 또 하나의 위대한 중심지이며 그 중요성에 있어서도 피렌체에 버금가는 자부심에 넘치는 번영의 도시 베네치아로 눈을 돌려보자. 무역을 통해서 동방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던 베네치아는 르네상스 양식, 즉 건축에 고전적인 형식을 적용한 브루넬레스키의 방식을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보다 더디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단 르네상스 양식을 받아들인 후에는 새로운 경쾌함과 따뜻함이 이 양식에 더해져서 근대의 다른 어떤 건축양식보다 더욱 밀접하게 헬레니즘시대의 대상업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크의 장대함을 연상케 해주고 있다. 이 양식의 가장 특징적인 건물 중의 하나는 산 마르코성당의 도서관이다.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는 피렌체 출신의 야코포 산소비노인데 그는 자신의 양식과 작풍을 그 도시 특유의 분위기, 즉 환초로 둘러싸인 해변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화려한 베네치아의 밝은빛에 어울리도록 완벽하게 적응시켰다. 이처럼 경쾌하고 단순한 건물을 분석한다는 것은 약간 현학적인 취미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건물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은 이 시대의 거장들이 몇 가지 안되는 간단한 요소들을 엮어서 어떻게 전혀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냈는지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활기 넘치는 도리아식 원주를 가지고 있는 건물 아래층은 가장 정통적인 고전 양식을 채용하고 있다. 산소비노는 콜로세움에서 볼 수 있는 건축의 법칙을 많이 따르고 있다. 그는 이와 동일한 전통을 고수해서 이오니아 식으로 건물 위층을 꾸밀 때에도 난간을 얹고 또 그 위에는 조각상들을 배열한 소위 아티카를 갖추어 놓았다. 그러나 산소비노는 기둥 양식들 사이의 아치 형태가 콜로세움의 경우에서처럼 기둥 위로 놓이지 않고 또 다른 한 쌍의 가늘고 작은 이오니아식 원주로 받치게 함으로써 상이한 기둥양식들이 서로 엉켜 풍요로운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2. 찬란한 빛 속의 색채들을 뒤섞이게 만드는 화가

그리고 그는 이 건물에 난간과 꽃 장식과 조각상들을 이용하여 고딕 시대의 베네치아 건축의 정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트레이서리를 연상시키는 외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은 친퀘첸토의 베네치아 미술을 유명하게 만든 이 도시 특유의 취향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물의 예리한 윤곽을 희미하게 만들고 휘황찬란한 빛 속에 사물의 색채들을 뒤섞이게 하는 환초로 둘러싸인 해변의 분위기가 이 도시의 화가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의 화가들이 해왔던것보다 더 신중하고 민감하게 색채를 사용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이나 그 곳의 모자이크 장인들과 접해왔던것도 어쩌면 이러한 경향을 낳게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색채에 관해서 말을 한다거나 글을 쓴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작품의 크기가 매우 축소된 도판으로는 색채에 역점을 둔 걸작의 참모습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어느정도 설명할수 있는 부분은 있다. 예를 들면 중세의 화가들은 사물의 진정한 형태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만큼 사물의 진정한 색채에 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밀화와 에나멜 세공과 패널화에서 그들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값비싼 색채들, 이를테면 빛나는 황금색과 티 하나 없는 군청색 등을 배합해서 고루 칠하기를 즐겼다. 피렌체의 위대한 개혁자들은 색채보다는 소묘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그림이 색채면에서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나 한 그림 속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형태들을 하나의 통일된 구성으로 결합시키는데 색채를 주된 수단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던 화가는 매우 드물었다.

3. 대칭의 구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법

그들은 채색하기전에 원근법이나 구도로써 그러한 통일된 구성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를 그림 위에 덧붙이는 부가적인 장식으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베네치아에 있는 산차카리아의 작은 교회에 가서 위대한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가 그의 말년 기인 1505년에 제단에 그린 그림 앞에 서보면 색채에 대한 그의 접근법이 매우 달랐다는것을 당장 알아볼 수 있다. 그 그림이 특별히 밝거나 화려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림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전에 부드럽 고 다채로운 색채들이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실린 도판으로도 성모마리아가 앉아 있는 옥좌가 놓인 황금색의 빛나는 벽감에서 넘쳐흐르는 따뜻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성모의 팔에는 제단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는 아기예수가 안겨 있다. 천사 한사람이 제단 밑에서 조용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고 성인들은 옥좌의 양편에 조용히 서 있다. 성 베드로는 열쇠와 책을 들고 있으며 성카타리나는 순교의 상징인 종려 나무잎과 부러진 형들을 들고 있고, 성아폴로니아와 성경을 라틴 어로 번역한 학자여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성히에로니무스가 보인다. 성인들과 함께 있는 성모상은 그 이전이나 그 뒤로도 이탈리아 및 기타 다른 여러 곳에서 많이 그려졌지만 이러한 품위와 차분함으로 표현된 그림은 거의 없다. 비잔틴전통에서의 성모상은 양쪽에 굳은 표정을 하고 서 있는 성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벨리니는 그림의 질서를 깨트리지 않고 이 단순한 대칭적인 구도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성모와 성인들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 신성함과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은채 사실적이고 살아 있는것처럼 변화시키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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