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미술세계에서 빠질 수 없는 것

1. 성경의 재해색을 하는 머큐리

그의 유명한 머큐리 상은 발 끝으로만 땅을 디디고 있다. 아니 사실은 땅이라기보다 남풍을 상징하는 가면의 입에서 분출되는 바람을 디디고 있다. 이 조각상은 아주 교묘하게 균형이 잡혀 있기 때문에 실제로 공중에 떠서 빠르고 유연하게 날아가는 것같이 보인다. 고전기의 조각가라면, 심지어 미켈란젤로까지도 그러한 효과는 본래의 무거운 재료 덩어리를 생각나게끔 하는 조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잠볼로냐는 파르미자니노 못지않게 이러한 기존의 규칙에 도전해서 아주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보여주려고 했다. 16세기 후반의 미술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베네치아 출신의 야코포로 부스터 통칭 틴토레토였다. 그도 역시 티치아노가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형태와 색채에 있어서의 단순한 아름다움에 진력이 나있었다. 그러나 그의 불만은 예외적인 것을 만들어내려는 단순한 욕망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티치아노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화가로서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그림들은 감동적이기보다는 쾌감을 주는 경향이 더 많다고 느꼈던 것 같다. 즉 티치아노의 작품은 성경의 엄숙한 이야기와 성자들의 전설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할만큼 열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 옳았건 틀렸건 간에 그는 이 성경의 이야기들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그린 사건의 긴장감과 극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결심했음이 분명하다. 그가 그의 그림을 비범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얼핏 보면 이 그림은 혼란스럽고 번잡하다. 여기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라파엘로 의 작품에서처럼 화면 위에 질서있게 배치된 인물상들이 아니라 이상하게 뚫려있었는데, 그는 지금는 궁릉이다. 왼쪽 구석에는 후광이 빛나는 키가 큰 사람 벌어지고 있는 일을 멈추게 하려는 듯이 팔을 쳐들고 있다.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면 오른쪽의 궁륭 천장 바로 아래에서 막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성 마르코 성당에서 벌어진 예술

두 사람이 묘소에서 시신을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그들은 관의 뚜껑을 열었고 터번을 쓴 또 한 사람이 그들을 돕고 있다. 뒤에 서 있는 귀족은 횃불을 들고 다른 묘소의 비명을 읽으려 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히 지하 묘굴을 파헤치고 있는 중이다. 시체 하나가 양탄자 위에 널부러져 누워 있는데, 그 모습이 괴이한 단축법으로 그려져 있다. 그 옆에 화려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시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오른쪽 구석에는 놀란 표정으로 성인 후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틀림없이 성인일 것이다을 보면서 커다란 몸짓을 하고 있는 남녀 한 무리가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책을 한 권 들고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바로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복음서 저자 성 마르코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은 성 마르코의 유해를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왔던 이야기 중의 한 장면을 묘사 한 것이다. 베네치아에는 그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서 성 마르코대성당에 유명한 감실이 건립되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성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주교를 역임하다가 죽어서 그곳의 지하 묘굴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베네치아 사람이 이 성인의 유해를 찾는 경건한 부름을 받고 지하 묘굴을 헤치고 들어가보니 어떤 묘석에 성인의 귀중한 유해가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우연히 바로 그 유해를 꺼내 놓았을 때 성 마르코가 갑자기 나타나서 지상에 현존하는 그의 유해를 알려주었다. 틴토레토는 바로 그 순간을 선택했다. 성인은 사람들 에게 더 이상 묘굴을 뒤지지 말라고 명한다. 성인의 유해는 이미 발견된 것이다. 그 것은 성인의 발치에서 온몸에 빛을 발하며 누워 있고 벌써 그 시신의 존재가 기적 을 일으키고 있다. 오른쪽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남자는 그를 사로잡고 있던 악마 로부터 해방되어 악마가 그의 입에서 한줌 연기로 변해 도망치고 있다.

3. 틴토레토 작품의 전통적인 방식

감사하는 마음으로 꿇어 앉아서 경배를 하고 있는 귀족은 이 그림을 주문했던 헌납자로서그는 종교 단체의 일원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그림을 처음보고 아주 기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빛과 어둠, 원경과 근경 및 조화가 결여된 몸짓과 동작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틴토레토가 보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우리들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엄청난 기적의 인상을 창조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곧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틴토레토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조르조네와 티치아노같은 베네치아 화가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었던 원숙한 색채의 아름다움까지 희생해야만 했다. 런던에 있는 그의 그림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는 음산한 빛과 불안정한 색조가 어떻게 긴장감과 흥분된 감정을 고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극적인 사건이 절정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공주는 마치 그림 속에서 곧바로 우리들을 향해 달려나올 것같이 보인다. 한편 주인공인 성 게오르기우스는 일반적인 규칙과 정반대로 주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배경 속에 멀리 들어가 있다. 그 당시 피렌체의 위대한 비평가이자 전기 작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틴토레토를 이렇게 평가했다. 만약 그가 정통적인 방법을 버리지 않고 선배들의 아름다운 양식을 따랐다면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바사리는 용의주도하지 못한 제작 방법과 괴상한 취향이 그의 작품을 망쳐 놓았다고 생각했다. 바사리는 틴토레토가 그의 작품에 마무리 손질을 하지 않은 데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또 그의 스케치는 아주 거칠어서 그의 연필 획선은 정확한 묘사보다는 힘을 보여주며 또 우 연하게 그려진 것같이 보인다라고 했다. 그러한 비난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시대의 미술가들을 공격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의 위대한 혁신자들은 본질적인 것에만 집중을 하고 통상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기법적인 완성도에 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틴토레토와 같은 시대에는 기법적인 탁월함이 아주 높 은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약간의 기계적인 소질만 있으면 누구나 그 기법상의 트릭에 숙달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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