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가사리 건축물들과 피렌체의 건축

1. 세계의 불가사의 건축물의 탄생

일반적인 건물의 실용적인 요구에 집착해서는 성취할 수 없는 완벽한 균형과 균제를 갈망했던 것이다. 이러한 건축가들중의 한 사람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무색케 할 당당한 건물로 명성을 얻을 수 있다면 전통과 편의성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유력한 후원자를 만났을 때 그것은 정말 기념할만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 때 전통에 따라 성 베드로가 묻힌 자리에 세워 졌던 고색 창연한 성 베드로 바실리카를 헐어내고 1506년에 그 자리에 교회 건축의 오랜 전통과 신에게의 봉사라는 목적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교회를 짓 기로 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이 이 일을 맡긴 사람은 이러한 새로운 양식의 열렬한 옹호자인 도나토 브라만테였다. 지금까지 완전하게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그의 건축물 중의 하나인 작품을 보면 그가 독창성 없는 모방자가 되지 않고 얼마나 고전 시대 건축의 이상과 기준을 잘 소화해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그가 작은 신전으로 부르던 예배당인데 동일한 양식으로 된 회랑이 이 예배당을 둘러 싸도록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그것을 짓지는 않았다. 이것은 작은 정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계단 위에 둥근 건물을 세운 뒤 둥근 지붕을 얹었고 주위에 도리아식 열주를 두르고 있다. 처마 장식띠 위에 이어진 난간은 이 건물 전체에 경쾌하고 우아한 맛을 더해주고 있으며 실제 예배당의 작은 건물과 장식적인 열주는 고대 신전들이 그러하듯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후 교황은 이 거장에게 새로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맡겼는데 그는 이 것이 기독교 세계에서 정말 놀랄만한 업적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브라만테는 일천 년 동안 내려온 서유럽의 전통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서유럽전통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교회는 미사가 집전되는 주제단이 동쪽으로 향해있는 장방형의 홀이 되어야 했다.

2.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계획

그 건물에만 어울릴 수 있는 그리스 고전기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면서 그는 거대한 십자형 홀을 중심으로 둘레에 대칭적으로 예배당을 배치한 정방형의 성당 을 설계했다. 성당 건립을 위한 메달 이 홀에는 거대한 아치 위에 얹은 거대한 둥근 지붕을 씌울 작정이었다. 브라만테는 지금도 로마 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여전히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고대 로마의 최대 건물인 콜로세움의 효과와 판테온 신전의 효과를 결합시키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미술을 흠모하며 전대 미문의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야심이 편의성에 대한 고려와 유구한 전통을 압도했던 기간은 매우 짧았다. 브라만테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 계획은 실행되지 못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 거대한 건물이 돈을 너무 많이 삼켰기 때문에 충분한 기금을 모으려 애쓰다가 교황은 종교 개혁을 유발시킬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독일의 루터로 하여금 최초의 공개 항의를 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새로운 대성당 건축을 위한 기부금을 받고 면죄부를 판매한 행위였다. 카톨릭 교회 내부에서조차도 브라만테의 계획에 대한 반대가 커지고 있었다. 교회 건물이 상당한 진척을 보일 무렵 사방이 대칭인 교회를 짓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성 베드로 대성당은 그 거대한 규모를 제외하고는 원래의 계획과 일치되는 것이 거의 없다. 브라만테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 계획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대담하고 진취 적인 기상은 그토록 많은 위대한 거장들을 배출한 1500년경을 전후로 하는 르네상스 전성기의 특징이다.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었으므로 분명히 불가능한 것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낼 때가 있었다. 다시 한번 이 위대한 시대의 몇몇 대표적인 거장들을 배출한 곳은 바로 피렌체였다.

3. 피렌체의 위대한 조각가와 화가들

1300년경의 조토 시대와 1400년대 초 의 마사초 시대 이래로 피렌체의 미술가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의 전통을 키워나갔으며 또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다 그들의 우수성을 인정했 다. 앞으로 우리는 위대한 미술가들이 거의 모두 이처럼 단단하게 확립된 전통 속 에서 성장했음을 알게 될텐데 이러한 거장들 뒤에는 그 기술의 대부분을 습득할 수 있게 해준 군소 대가들의 공방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유명한 거장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토스카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피렌체에서 화가이며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가 경영하는 유수한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베로키오의 명성은 당시 대단히 유명했으므로 베네치아 시는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장군의 기념물 제작을 그에게 맡겼다. 콜레오니 는 베네치아 장군의 한 사람으로 그의 특별한 무공 때문이라기보다는 많은 자선기관을 세워준것을 시민들이 감사하게 생각하여 기념물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베로키오가 만든 기마상은 그가 도나텔로의 전통을 이어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꼼꼼하게 말의 해부학을 연구했으며 또 얼마나 명확하게 콜레오니의 얼굴과 목의 근육을 관찰했는가를 보게 된다. 그 러나 무엇보다도 놀랄만한 점은 투지만만하게 부대의 선봉장으로 달리는 것같이 보이는 말탄 사람의 자세이다. 후대에 와서 우리의 마을과 도시에 등장하게 된 다 소 존경할만한 황제들이나 왕, 왕자들과 장군들을 나타내는 청동 기마상들에 익숙 해져 있는 우리들로서는 베로키오의 위대함과 단순성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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