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의 거장이 만들어낸 예술의 혼

1. 세 거장의 예술적인 만남과 그들의 작품

인물들은 조화로운 구도를 이루는 가운데 적절히 배치되어 각자가 조용하고 편안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페루지노가 이 아름다운 조화를 얻기 위해서 희생시킨 것이 있다. 즉 콰트로첸토의 거장들이 그처럼 정열적인 애착을 가지고 추구했던 자연의 충실한 묘사를 어느 정도 포기했던 것이다. 페루지노의 천사들을 잘 살펴보면 그 천사들이 다소 동일한 유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페루지노가 창안해서 항상 새롭게 변화시켜가며 그의 그림에 이용했던 아름다움의 한 전형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너무 많이 보게 되면 그의 창안에 식상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그림들은 미술관에 나란히 진열하기 위해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작품 하나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그의 작품들 중 뛰어난 몇몇 그림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세계보다 더 평화롭고 조화로운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면서 스승의 화풍을 재빨리 익히고 흡수한 젊은 라파엘로는 피렌체에 와서 가슴 설레이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자기보다 서른한 살 위인 레오나르도와 여덟 살 위인 미켈란젤로가 그 이전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던 미술의 새로운 차원을 확립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젊은 미술가라면 이 거장들의 명성에 압도되어 기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점에서는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사 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레오나르도와 같은 광범위한 지식을 갖지 못했고 또 미켈란젤로와 같은 정력도 없었다. 그러나 이 두 천재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어울리기가 어려웠고, 그들에게 또한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였지만 라파엘로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후원자들의 마음에 들 수 있었다. 더욱이 그는 이 선배 거장들을 따라잡을 때까지 쉬지 않고 작업할 수 있었다. 라파엘로의 훌륭한 그림들은 조금도 힘이 들어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그것이 힘들고 혹독한 작업을 거쳤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단지 감미로운 성모상을 그리는 화가로 인식되어 있으며 그 성모상은 너무나 잘 알려져서 더 이상 하나의 그림으로 평가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2. 성모에 대한 다양한 해석

미켈란 젤로가 묘사한 조물주가 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만인에게 각인되었듯이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상도 후대들에게 성모의 진정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 성모상의 값싼 복제품들이 초라한 집안에도 걸려 있는 것을 흔히 본다. 그래서 우리는 그처럼 일반적인 호소력을 지닌 그림들은 반드시 어딘가 알기 쉬운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가 쉽다. 사실상 이 그림들에서 보이는 외견상의 단순함은 깊은 생각과 세심한 계획, 엄청난 예술적인 지혜의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다.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와 같은 그림은 수세대 에 걸쳐서 메이디아스나 프락시텔레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완전함의 기준으로 간주되어 왔다는 점에서 진실로 고전적이다. 그것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정말로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그림을 동일한 테마를 다룬 그 이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그 이전 작품들도 모두 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에서 획득한 그런 단순성을 추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라파엘로가 페루지노의 인물 유형의 조용한 아름다움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스승의 어딘가 공허한 듯한 규칙성 과 제자의 그림에서 보이는 충만한 생명력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입체감 있게 묘사되어 어둠 속으로 물러나는 성모의 얼굴, 자연스럽게 늘어트려진 옷자락 속에 싸인 육체의 볼륨,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확고하고 애정어린 자세 등 모든 것이 완벽한 균형의 효과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약간만 변경해도 그것이 전체의 균형을 깨트리게 되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구도에는 긴장감이라든지 부자연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 이 그림은 마치 이것 이외의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없으며 태초부터 그렇게 존재했었던 것 같이 보인다.

3. 프레스코의 균형잡힌 구성과 영감

라파엘로는 수년간 피렌체에 머문 뒤 로마로 갔다. 그가 로마에 도착한 것은 아마도 1508년인 것 같은데 이 때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착수했을 무렵이다. 율리우스 2세는 곧 이 젊고 귀염성 있는 미술가에게도 일감을 찾아주었다. 교황은 라파엘로에게 바티칸 궁 안의 스탄차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방들의 벽면을 장식하는 일을 맡겼다. 라파엘로는 이 방들의 벽과 천장에 있는 일련의 프레스코에서 완전한 디자인과 균형 잡힌 구성의 탁월한 솜씨를 증명해 보여 주었다. 이 작품들의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상하려면 그 방 안에 한참 머물러 서서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움직임에 대응하고,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에 대응하는 전체적인 짜임새의 조화와 다양성을 느껴보아야 한다. 이 그림들을 이 방 밖으로 끌어내어 축소된 도판을 통해 보면 딱딱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프레스코를 직접 볼 때는 등신대로 서 있던 개별적인 인물들이 축소된 도관에서는 여러 인물 군상들 속에 흡수되어 잘 분간하지 못하게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전체에서 세부만을 따로 찍은 도관에서는 인물들이 본래 가 지고 있던 중요한 역할, 즉 전체적인 구성의 우아한 선율의 일부를 형성하는 역할을 상실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부유한 은행가인 아고스티노 키지의 별장에 그림 보다 작은 규모의 프레스코에는 앞의 경우가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는 피렌체의 시인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시에서 주제를 따왔는데, 그 시는 또한 보티첼리에게 영감을 주어 비너스의 탄생을 그리게 했던 시이기도 하다. 그 시는 못생긴 거인 폴리페모스가 아름다운 바다의 요정 갈라테아에게 사랑의 노래를 바치지만 그녀는 그의 거친 노래 솜씨를 조롱하며 두 마리의 돌고래가 끄는 수레를 타고 파도 위를 달려가고, 바다의 다른 신들과 요정 들은 즐거운 무리를 이루어 그녀의 주위로 모여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라파엘로의 프레스코는 즐거운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갈라테아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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