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신비로운 탄생

1. 인간의 천재성이 만들어 낸 작품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윤곽을 만족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소묘의 정확성이나 정밀한 관찰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이 구성의 아름다움을 접어둔다면 마사초나 도나텔로의 작품에서 본 바와 같이 신빙성있고 놀라운 현실의 일부분을 갑자기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도 그 작품이 갖는 진정한 위대성에 비하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성이나 소묘의 기술과 같은 기법상의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는 인간들의 행위와 반응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그 깊은 통찰력과 우리 눈앞에 한 화면을 생생하게 전개시켜 보여준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의 한 목격자는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레오나르도는 받침대 위에 올라가 그가 그려놓은 것을 유심히 바라보며 붓 한번 대지 않고 팔짱을 끼고 하루 종일 서 있곤 했었다고 한다. 작품이 이렇게 파손된 상태 속에서도 그가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색의 결과이다. 최후의 만찬이야말로 인간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위대한 기적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최후의 만찬보다 훨씬 더 유명한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들자면 그것은 리자라는 이름을 가진 피렌체의 한 부인의 초상인 모나리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와 같이 지나치게 유명한 명성은 그 예술 작품을 위해서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림 엽서나 심지어 광고에서조차도 모나리자를 보아왔으므로 그것을 실제 화가가 살과 피를 가진 실존 인물을 그린 그림으로 참신한 눈을 가지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그림에 관해서 아는 것이나 안다고 믿었던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 처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먼저 감탄하게 하는 것은 리자라는 인물이 놀라울 정도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2. 신비롭게 우리에게 비춰지는 모나리자

그녀가 실제로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녀의 마음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우리의 눈 앞에서 변하여 볼 때마다 달라 보이는 것 같다. 이 그림은 도판으로도 그 이상한 효과를 경험할 수 있지만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원화 앞에 서서 보면 거의 불가사의하다. 우리를 조롱하는 것같아 보이는가 하면 그녀의 미소 속에 어떤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상당히 신비스럽게 들리겠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 중에는 그런 효과를 내는 것들이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는 어떻게, 그리고 어떤 수단으로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자연의 위대한 관찰자인 레오나르도는 그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사람들의 눈이 어떤 작용을 하 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연을 자연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미술가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문제, 즉 정확한 소묘를 조화로운 구성에 결합하는 것만큼이나 미묘 한 문제를 남겨 놓았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사초의 뒤를 밟아간 이탈리아의 콰트로첸토 거장들의 예술 작품에는 하나같이 인물들이 어딘가 딱딱하고 거칠어서 나무로 만든 것같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것이 비단 화가의 인내심이 부족하다거나 지식이 모자라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데 있어서 반에이크보다 더 참을성이 많은 사람도 없으리라. 또한 만테냐보다 정확한 소묘법과 원근법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재현한 자연은 장대하고 인상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물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각상들 같이 보인다. 아마도 그 이유는 한 인물을 선은 선대로, 세부는 세부대로 더욱 의도적으로 잘 모사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 인물은 지금까지 실제로 움직이고 숨쉬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없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3. 스푸마토의 기원 및 기법사용

그것은 마치 화가가 갑자기 마법을 걸어서 그들을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는 동화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영원히 돌로 굳어 버리게 만든 것과 같다. 미술가들은 이런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예를 들면, 보티첼리와 같은 경우 인물들의 윤곽이 덜 딱딱하게 보이기 위해 물결치는 머리카락과 펄럭이는 의상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발견한 사람은 레오나르도뿐이었다. 화가는 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상상할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가령 윤곽을 그처럼 확실하게 그리지 않고 형태를 마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것같이 약간 희미하게 남겨두면 이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인상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의 창안으로, 이탈리아어로 스푸마토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 속으로 뒤섞여 들어가게 만들어 무엇인가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는 희미한 윤곽선과 부드러운 색채를 가리킨다. 이제 모나리자로 다시 돌아가 살펴보면 그 신비스러운 효과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스푸마토기법을 아주 세심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얼굴을 그리거나 낙서를 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표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주로 두 가지 요소, 즉 입 가장자리와 눈 가장자리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가 부드러운 그림자속으로 사라지게 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남겨둔 부분들이 바로 입과 눈 부분이다. 모나리자가 어떤 기분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다. 그녀의 표정은 늘 붙잡을 수가 없다. 물론 이러한 효과를 내게 하는 것은 이러한 모호함뿐만은 아니다. 그 뒤에는 더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 레오나르도는 그와 같이 완벽한 솜씨를 가진 대가가 아니면 감히 시도할 없는 그런 대담한 일을 해냈다.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의 양쪽이 꼭 들어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제일 분명하게 보이는 곳은 배경에 있는 환상적인 풍경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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