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통찰력으로 그려지는 작품들

1. 코레조의 거룩한 밤의 탄생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거룩한 밤이다. 키가 큰 목동 이 이제 막 하늘이 열리면서 천사들이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하고 노래하는 환영을 본다. 천사들은 기분 좋게 구름을 타고 다니며 긴 지팡이를 든 목동 이 급히 들어오는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목동은 허물어진 마굿간의 어둠 속 에서 기적을 본다. 갓 태어난 아기 예수가 사방에 빛을 발하고 있으며 행복한 어머 니의 아름다운 얼굴을 밝게 비추고 있다. 목동은 동작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경배하기 위해서 그의 모자를 만지고 있다. 그 옆에는 하녀가 두 사람 있는데 한 사람은 구유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눈이 부신 듯하며 다른 사람은 행복한 표정으로 목동을 쳐다보고 있다. 성 요셉은 어둑어둑한 바깥에서 나귀를 돌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첫눈에는 이와 같은 배치가 기교가 없으며 우연한 것같이 보일 것이다. 왼쪽의 복잡한 장면에 대응하는 군상들이 오른쪽에는 없으므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성모와 아기 예수에게 빛을 던져 강조함으로써 전체 그림은 균형을 이루게 된다. 코레조는 색과 빛을 사용하여 형태에 균형을 주고,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발견을 티치아노보다 더욱 잘 활용하였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장면으로 목동과 함께 달려가 요한 복음서가 전하는 어둠 속을 비추는 빛의 기적을 보게 되 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코레조 이후 세대의 수많은 화가들이 수세기 동안 그처럼 반복해서 모방한 이 화가의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가 교회의 천장과 둥근 지붕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그는 아래의 본당에 있는 신도들에게 천장이 열려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늘의 영광을 곧장 바라보고 있다는 환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2. 홀바인의 끝없는 통찰력과 거장다운 절제

그러나 결국 그는 영국에 정착하기로 했고 헨리 8세로부터 궁정화가라는 공식직함을 받게 되자 드디어 자기가 몸담고 일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를 찾게 되었다. 그는 더이상 성모상을 그릴 수는 없었으나 궁정 화가의 일은 매우 다양했다. 그는 보석과 가구, 연극의상, 그리고 실내 장식뿐만 아니라 무기나 술잔까지 디자인했다. 그러나 그의 주된 임무는 왕실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헨리 8세시대의 남자와 여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홀바인의 끝없는 통찰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헨리 8세의 신하로 수도원의 해체에 참가했던 관리 리처드사우스웰 경의 초상화이다. 홀바인의 이런 초상화들에는 드라마틱한 것은 하나도 없고 사람의 눈을 끌만한 것도 없으나 이 그림들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모델의 마음과 인품이 드러나보이는 것 같다. 홀바인이 그 인물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나 호의 없이 본대로 충실하게 그린 것이라는 점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홀바인이 인물을 이 그림에 배치한 방법을 보면 우리는 거장의 빈틈없는 솜씨를 발견할 수 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체 구성 이 아주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아주 알기 쉽게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홀바인이 의도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초기의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배경, 즉 평소에 그 인물이 가까이 했던 것들을 통해서 주인공의 특성을 표현하려고 하였으며 세부를 묘사하는 그 의 탁월한 솜씨를 여전히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고 기법이 완숙해감에 따라서 그러한 트릭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도 않았으며 또 초상 인물로부터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게 의도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그의 그림을 높이 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거장다운 절제 때문이다.

3. 니콜라 힐리어드의 유아한 세밀화 작품

홀바인이 떠나자 독일어권의 회화는 놀라울 정도로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죽자 영국의 미술도 그와 비슷한 꼴이 되었다. 사실상 영국의 회화 중에서 종교 개혁의 회오리를 견디어낸 유일한 분야는 홀바인이 그처럼 확고하게 다져놓은 초상화뿐이었다. 이 분야에서조차도 남유럽의 매너리즘 취향이 나타나고 홀바인 풍의 간결한 양식 대신에 귀족적인 세련과 우아함이 이상시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젊은 귀족의 초상화는 이런 새로운 유형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이것은 필립 시드니 경과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이었던 유명한 영국의 화가 니콜라 힐리어드가 그린 세밀화이다. 가시가 많은 들장미 넝쿨에 둘러싸여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맥없이 나무에 기대 서 있는 이 우아한 청년을 보면 정말 시드니 경의 전원시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연상하게 된다. 대충 고귀한 사랑이 괴로움을 가져온다 라는 의미의 라틴어 명문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세밀화는 청년이 구애를 하고 있는 숙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 그린 그림같다. 그 괴로움이라는 것이 여기에 그려져 있는 가시들보다 더 절실한 것인지는 마음 쓸 일이 아니다. 이 시대의 젊은 멋쟁이라면 사랑의 슬픔과 짝사랑을 과장해서 표시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한숨과 소네트들은 모두 우아하고 멋진 장난으로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모두들 색다르게 변형시키거나 세련되게 만들어 자신을 뽐내고 싶어했다. 만약 힐리어드의 세밀화가 그러한 장난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이 그림은 우리에게 더 이상 가식적이고 어색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값진 상자에 담긴 이 사랑의 선물을 받은 처녀가 거기에 그려진 멋있고 우아한 구애자의 처량한 모습을 보고 마침내 그의 고귀한 사랑을 받아 들이게 되기를 바라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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