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화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


1. 성 베드로 대 성당 천장화와 교황의 이야기

교황의 허락을 얻어 그는 당장 카라라에 있는 유명한 대리석 채석장으로 가서 이 거대한 영묘를 장식할 대리석 석재들을 선별했다. 이 젊은 미술가는 그의 정이 닿아 세상에서 이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조각상들로 변모시켜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이들 대리석들을 보고 압도되었다. 그는 갖가지 형상들로 들끓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채석장에서 대리석을 선별하는데 6개월을 보냈다. 그는 돌 속에서 잠자고 있는 형상들을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로마로 돌아와 작업에 착수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위대한 사업에 대한 교황의 열정이 상당히 식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오늘날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교황의 태도가 달라진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영묘를 세우려는 계획이 그의 마음 속에 더 귀중했던 다른 계획, 즉 새로운 성 베드로 대 성당을 신축하려는 계획과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영묘는 원래 옛날 성당 건물 안에 안치될 계획이었는데 그것을 헐고 나면 그 영묘를 어디에 세울 것 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없는 실망에 빠진 미켈란젤로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의심했다. 그는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여 심지어 그의 경쟁자들, 특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 공사를 맡은 브라만테가 그를 독살하려 한다고까지 의심하였다. 공포와 분노로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은 그는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가서 교황에게 만약 교황이 자신을 원한다면 몸소 찾아오라는 무례한 편지를 보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교황이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렌체의 시장을 통해서 이 젊은 조각가가 로마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는 정식 협상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이 젊은 미술가의 거취나 계획이 국가의 미묘한 문제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에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같다. 피렌체 시민들은 심지어 미켈란젤로에게 계속해서 은신처를 제공해준 이유로 교황의 노여움을 사게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피렌체 시장은 미켈란젤로에게 율리우스 2세에게 돌아가 봉사하라고 설득하며 그에게 추천서까지 한 통 써주었다.

2.  미켈란젤로 천장화 초기시절

그 추천서에는 그의 예술이 이탈리아 전체, 아니 전 세계에서 비교될만한 것이 없으며 만약 그를 친절하게 대해주기만 한다면 그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 만한 작품을 창조할 것이다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 이번만은 외교 문서가 진실을 말한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로마로 돌아오자 교황은 그에게 또 다른 주문을 떠맡겼다. 바티칸에는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지은 시스티나 채플이라 불리는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이 예배당의 내면은 화가들, 예를 들어 보티첼리, 요와 같은 전 세대의 가장 유명한 기장들의 작품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궁륭형 천장은 아직 아무 그림이 없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그 천장에 그림을 그려넣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 주문을 받지 않으려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는 자신이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라고 변영화기도 했다. 그는 이 달갑지 않은 주문이 적들의 음모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것이라 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교황이 완강하게 버티자 그는 할 수 없이 감돌 속에 12사도들을 그려넣는 아주 간단한 설계에 착수해서 피렌체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도와줄 조수들을 불러 고용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예배당 안에 혼자 틀어박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계획을 혼자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가 교황청의 한 예배당 안의 받침대 위에서 4년 간의 고독한 작업끝에 이룩해놓은 것을 보면 평범한 우리들로서는 어떻게 한 개인이 그만한 것을 성취할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예배당 천장에 이 거대한 프레 스코를 그리기 위해 이 장면들의 세부를 준비하고 스케치한뒤에 그것을 벽면에 전사하는데 요구되는 육체적인 노력만도 상상을 초월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천 장화이므로 미켈란젤로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위를 쳐다보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실제로 그는 비좁은 공간에서의 자세에 익숙해져서 이 시기에는 편지를 받아도 그것을 머리 위에 쳐들고 몸을 뒤로 제치고 읽었다고 한다.

3. 천지창조와 노아의 홍수의 이야기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이처럼 거대한 공간을 그림으로 채운 한 사람의 육체적인 작업도 그의 지적인, 그리고 예술적인 업적과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후대에게 제시해준 항상 새롭고 풍요로운 착상들, 그리고 모든 세부를 묘사하는 정확한 솜씨와 그 비전의 장대함은 인류에게 천재의 능력에 대한 전혀 새로운 개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이 거대한 작품의 세부 도판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 전부를 제대로 알기에는 부족하다. 예배당 안에 들어섰을 때 그 전체가 주는 인상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사진과는 대단히 상이하다. 예배당은 얕은 궁륭 천장을 가진 대단히 크고 높은 강당처럼 생겼다. 벽 윗부분에는 미켈란젤로의 선배들이 전통적인 수법으로 그린 모세와 예수에 관한 이야기의 그림들이 들어서있다. 그러나 천장을 쳐 다보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세계인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예배당 양쪽 벽의 5개 창문 사이에서 시작되는 궁릉 천장에 유태인들에게 메시아의 출현을 예언하는 구약 성서의 예언자들과 그 사이사이에 이교도들에게 예수의 재림을 예언했다고 전해지는 무녀들의 거대한 그림을 그려넣었다. 그는 이들 예언자들과 무녀들을 깊은 사색에 잠겨 있거나 혹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논쟁을 하거나 혹은 그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한 형상들을 하고 있는 초인간적인 남녀의 상으로 표현하였다. 등신대보다 더 큰 이들 인물상들이 열지어있는 사이의 천장 꼭대기에는 천지창조와 노아의 홍수에 관한 이야기를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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